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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콜택시는 왜 장애인을 외면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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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06-2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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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장애인 콜택시는 왜 장애인을 외면했을까

KBS | 양창희 | 입력 2016.06.29. 15:19





벌써 한 시간째. 오늘도 역시 장애인 택시는 오지 않는다. "대기 차량이 열다섯 대 있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몸이 불편한 주인을 위해 휴대전화 메시지를 대신 읽어 주는 기계음의 여성 목소리가 오늘따라 차갑게 들린다. "빈 차가 생기는 대로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무미건조한 콜센터 직원 말도 야속하기만 하다.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지만, 움직이지 못해서 겪는 설움은 쉽게 익숙해지질 않는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 몸을 움직여 목적지로 가는 것은 매일매일이 도전이다. 몸부림을 치며 무거운 휠체어를 끌고 집 밖에 나와도 인도 곳곳은 장애물투성이다. 휠체어가 오를 수 있는 저상버스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오는데다 심하게 흔들려 위험하기 짝이 없다. 북적거리는 지하철도 사정은 비슷하다.

그나마 저렴한 기본요금으로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한 '교통약자 특별교통수단', 이른바 '장애인 콜택시'가 이용하기에는 가장 편리하다. 문제는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지난달 광주 장애인 콜택시의 평균 대기 시간은 한 시간에서 딱 1초 모자란 59분 59초였다. 서너 시간까지 기다려 본 적도 있다는 장애인들도 부지기수다. 몇 시간 동안 기다린 끝에 택시를 탔는데, 사람을 태우지도 않은 채 쉬고 있는 콜택시를 발견하고는 분통이 터진 적도 여러 차례란다.
 




장애인들의 하염없는 기다림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운전사들의 근무 상태를 점검해 달라는 민원이 잇따르자, 장애인 콜택시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광주 교통약자이동지원센터(이하 센터)는 내부 조사에 착수했다. 올해 3월부터 전체 운전사 백여 명 가운데 운행 실적이 저조한 운전사들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 결과는 놀라웠다. 운전사들이 미터기를 고의적으로 조작해 장애인들의 승차 요청을 회피해 온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미터기의 버튼 몇 개만 조합해 누르면 요금 결제까지 끝난 뒤에도 센터 모니터에는 여전히 차량이 승객을 태우고 운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허점을 노렸다. 미터기 조작으로 인해 장애인들을 태워야 할 '빈 차'는 '운행 중'인 상태로 나타났다. 장애인들의 택시 요청을 받을 차량 수가 줄어들었고, 자연히 대기 시간은 늘어났다. 조작 한 번으로 운전사들이 벌 수 있는 시간은 10분도 안 됐지만 반복적으로 이뤄지면서 전체 배차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사 대상이었던 운전사 25명 모두가 이런 수법으로 장애인 승차를 회피한 사실이 드러났다. 조작이 한두 차례만 이뤄진 차량도 있었지만, 전체 운행 기록 가운데 90% 가까이를 조작한 사실이 들통난 경우도 있었다. 호출을 받고도 늦게 출발하거나 멀리 돌아간 운전사들도 발견됐다. 한 장애인 택시 기사는 "공론화를 하면 전체 운전사의 7~80%는 비슷한 지적 사항이 나올 수 있다고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사들 사이에 미터기 조작이 만연해 있었다는 말이다.

특별히 금전적인 이익을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운행 기록까지 조작했을까. 장애인 콜택시 기사들은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었다고 항변한다. "쉴새없이 들어오는 승차 요청에 응하다 보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지만, 제대로 주어지는 휴식 시간은 밥 먹을 때 빼고는 없다. 미터기 조작은 물론 잘못됐지만, 어쩔 수 없는 사정에서 사용한 편법이다." 일이 고되고 힘들기 때문이라는게 기사들의 항변인데, 사실 그들의 내면에는 장애인을 몇명 태웠느냐에 상관없이 매달 고정 급여를 받는 임금 체계도 한몫을 했다.
 




장애인 콜택시에 동행해 기사들의 항변이 사실인 지 확인해 보았다. 한 차례 운행이 끝나고 또다른 승차 요청이 들어오는 시간이 5분을 넘기는 법이 없었다. 이동 거리도 길었다. 차량이 충분하지 않다 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들어오는 승차 요청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쉬지 않고 손님을 태우려 시내를 돌아다녀 봤지만, 승객은 이미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린 뒤였다. 콜택시 대수가 수요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기사들의 주장이 일정부분 타당해 보였다.
 




KBS 보도 이후 장애인 단체가 잇따라 센터를 항의 방문하고, 거동이 불편한 뇌병변 장애인들이 성명서를 내는 등 파장이 커지자 센터와 광주광역시는 진화에 나섰다. 적발된 운전사들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고 문제가 된 미터기 시스템도 교체하기로 했다. 미터기 조작에 대한 조사도 전체 운전사로 확대하기로 했다. 센터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내고 "교통약자의 편의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일부 직원들의 부당 행위를 사과한다"고 밝혔다.

현행 교통약자법은 "교통 약자가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이동 편의시설을 확충해 교통약자의 사회 참여와 복지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국가가 장애인들의 이동할 권리를 보장해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1조에서 정하고 있다.

교통약자법 제정 11년, 법에서 정하는 만큼의 장애인 이동권이 실현됐을까? 아직도 집 문턱 넘기가 힘든 장애인들은 제대로 시간 약속을 해 본 적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해마다 돌아오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이면 장애인 단체는 이동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퍼포먼스를 벌이지만, 몇 년째 현실은 그대로다. 택시를 타려고 평균 한 시간씩 기다리는 장애인들, 그리고 화장실 갈 시간을 벌려고 미터기를 조작했다는 택시 운전사들. 장애인 이동권의 척박한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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