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개인예산제는 기존의 획일적인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 제공 방식에서 벗어나 장애인 당사자가 주어진 예산 범위 내에서 자신의 욕구와 상황에 맞게 필요한 서비스를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한국장애인재단이 영국의 제도와 호주에 개인예산제 도입을 위한 연수를 추진했고, 관련 도서 번역을 했으며 몇몇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토론회를 실시해 개인예산제에 대한 긍정적 욕구를 도출했다. 그리고 21대 총선과 20대 대선을 맞아 개인예산제 도입 공약을 요청했던 것이 수용되면서 보건복지부는 2022년 기초연구를 한 다음 2023년부터 시범사업을 2년째 시행하고 있으며, 2026년부터는 본격 실시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2025년에도 시범사업을 할 것이다. 예산이 부족해 불과 6개월만 하지만 말이다. 매년 실시하고 있는 시범사업은 제도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전의 시험과 연구를 위한 것이다. 시범사업의 방법은 틀을 정해 놓고 문제는 없는지 시험해 보는 것과 다양한 방법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인지를 비교 연구해 보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정부의 시범사업은 성격상 전자에 해당한다. 다양한 모델을 시험해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다양한 형태의 연구와 시도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역의 변경이나 시범지역의 개수, 참여 인원의 차이 외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이 동일한 내용으로 시범사업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제도 도입을 위한 심도 있는 시범사업이라기보다 2026년 본격 도입 시기까지 시간을 메꾸기 위한 시간 끌기로 보인다.
활동지원 서비스의 일정 비율을 활용해 개인예산제를 실시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하다. 활동지원 서비스만이 아니라 다양한 욕구를 스스로 선택하기 위한 것이 개인예산제이다.
원래의 개인예산제는 활동지원 서비스의 유연한 변형이 아니다. 이용자 선택의 유연성을 위하여 활동지원 서비스조차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외국의 개인예산제는 활동지원 서비스를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예산제를 선택할 것인가를 당사자가 선택한다. 오히려 역으로 개인예산제 비용으로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개인예산제를 선택할 경우에는 활동지원 서비스 사정 평가하는 것처럼 개인예산제도 별도로 사정 평가를 하여 서비스의 금액을 산정한다. 우리의 개인예산제는 한국형 개인예산제라고 하기보다는 활동지원 서비스의 변형으로 개인예산제 실시라는 공약을 지키기 위한 편법적 방법으로 탄생한 것이다.
시범사업은 1차 4개소, 2차 8개소를 선정했고 3차 시범사업에는 지역을 조금 늘릴 것이다. 2차에서는 서울 강북구, 대전 동·서구, 대구 달성군, 부산 금정구, 경기 시흥시, 충남 예산군, 전남 해남군을 선정했다. 광역시 전체가 아닌 기초자치단체로 지역을 정했다. 대도시 5개소, 중소도시 1개소, 농촌지역 2개소이다. 인구 크기로 구분해 규모별 비교를 하기에는 균형이 맞지 않는다.
장애인 활동지원급여 수급 장애인 210명을 대상으로 활동지원급여의 20%(기존 급여 활용, 월 평균 40만원 내외)를 개인예산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개인별 이용계획을 수립,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에 필요한 재화 및 서비스를 선택해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복지관 등 전문기관은 개인예산 이용계획 수립 및 지역자원 발굴·연계 등을 지원한다.
급여의 기본 요건은 장애 연관성, 목표 연관성, 가격의 적정성으로 사정하고, 충족 시 자유롭게 선택·이용한다. 단, 지원 불가 항목으로 주류·담배·복권 구입, 세금·공과금, 저축·부채상환 등이 있다.
개인예산사용계획서와 모니터링을 하는 전문기관으로는 복지관이 대부분이었고, 자립생활센터나 장애인단체가 전혀 참여하지 않은 점은 매우 아쉽다.
개인예산제는 유연성, 자기주도형, 사람중심, 자기결정권 인정, 사회참여 확대, 옹호와 지지가 제도의 속성이다. 활동지원 서비스를 다른 서비스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유연성이다.
개인예산제는 급여유연화 모델과 필요서비스 제공 인력 활용모델의 두 가지 모델이 기초연구에서 다루어졌다. 유연화 모델에서는 활동지원 서비스의 10% 이내에서 재화와 용역의 구매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필요서비스 제공 인력 활용모델은 활동지원 서비스의 20% 내에서 간호사 등 특수자격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20%로 늘리면서 유연화 모델을 선택했다.
앞으로는 바우처 확대모델이라고 하여 활동지원 서비스만이 아니라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방과 후 활동, 발달재활 서비스 등 바우처에 모두 개인예산제를 도입해 20% 내에서 개인예산제를 실시하는 것이 검토되어야 한다. 언어발달 바우처와 가족상담 바우처는 특성상 적용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범사업의 소요 예산은 약 15억여원으로 서울은 50%를 국고보조하고, 다른 지역은 70%를 보조한다.
유연성은 서비스의 칸막이를 푼 것인데, 각 서비스의 특성이 무너지는 결과가 올 수도 있고, 활용계획서를 내고 정산을 하고 모니터링을 받는 입장에서는 절대 유연하지 않다고 할 수도 있다.
자기 주도형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기 주도라면 계획서를 제출하고 심의를 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사람 중심이라는 말은 개인의 인격을 인정한다는 의미인데 아직 제도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 발달장애인 중심의 운동 슬로건이었던 것을 모든 장애인으로 확대해서 사용할 용어로는 부적절해 보인다. 자기결정권 인정이나 옹호와 지지를 이야기하기에는 아직도 규제와 감시망이 부담스럽다.
진정 유연성을 추구한다면 20%라는 한도가 무너져야 한다. 사용계획서를 개인의 욕구와 필요성을 사정을 받기 위해 심사를 하는 과정이 없어져야 한다. 항시 필요한 것도 아니고 개인에 따라 필요가 없다가도 어느 날 일시적으로 필요할 수도 있다. 계획서를 제출하고 그에 맞추는 것은 자기주도가 아니다.
개인예산제를 실시하는 데 있어 절차는 규제가 아니라 지지와 지원이라고 말하지만, 당사자가 느끼는 것은 규제이다. 단지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이 다소 해결책이 생긴다거나, 다른 용역을 사용할 수 있어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만족할 일이다.
서울형 개인예산제는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는 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장애인 모두 서비스 신청이 가능하다. 전액 서울시 자체의 예산으로 추진되는데, 100명의 중증 장애인에게 6개월간 평균 월 40만 원을 지원한다. 현금서비스가 아니라 장애인이 필요한 구매에 있어 협력기관(지정된 7개 복지관)에 연락하면 대신해서 결제해 주는 방식으로 장애인 입장에서는 현물 서비스이다. 연간 4억5천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되는데, 사무를 처리하기 위한 경직성 인건비 등이 50%를 넘는다. 참고로 정부의 개인예산제는 경직성 경비가 33% 정도이다.
정부의 개인예산제는 후불제이다. 먼저 개인이 현금을 내고 영수증을 내면 사후 정산하는 방식이다.
개인예산제 서비스 사용 용도는 거의 모든 사용처를 허용한다. 건강에 관련된 것이나 일상생활에 관한 것, 주거와 교통, 돌봄과 교육 등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도박이나 담배, 저금이나 부채상환 등을 제외하면 거의 이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월세 지급, 식료품 구입, 택시요금 등 개인 재산 축적이나 사향 산업의 이용만 아니면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경우 가전제품 구입이나 취미생활에 필요한 물품 구입 등도 가능하다.
예산관리 방식은 직접 현금을 입금해 주는 방식과 공공기관이 예산을 관리를 하고, 사용 권한만 이용자에게 주는 방안이 있으며, 개인과 제3기관과 계약에 의해 관리와 정산을 맡기는 방식이 있다.
경직성 경비 즉 예산관리 인건비 등을 공공기관이 별도로 조성한다면 공공관리가 맞겠으나, 현재의 활동지원 서비스 공급 형태처럼 3자에게 계약에 의해 맡기는 방식이라면 이용 금액의 일정 비율을 수수료로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 대신 영수증 정산 처리는 대행해 주어야 한다. 수수료는 활동지원처럼 세금이나 보험료, 퇴직금 등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므로 하향 조정되어야 한다.
직접 지불 방식은 후불제와 선불제가 있다. 선불제를 채택할 경우에는 다른 용도에 사용하는 것을 사후에 알게 되므로 막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처음 한도 금액을 입금하고, 사용한 만큼 재충전 방식으로 한다면 적절한 사용 금액만 인정하고 나머지는 개인 자부담으로 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잘못 사용했다고 과태료를 내거나 환급하는 방식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
계약에 의한 예산관리 형태 역시 정산 처리를 대행해 주는 정도가 적절하다. 사용계획서는 필요 이상의 절차라 생각한다. 활동지원 서비스와 별개로 개인예산제를 실시한다면 사정이 필요하므로 계획서와 장애 정도, 사회참여 정도, 욕구 등을 종합판정해 금액을 정해야 하지만, 이미 정해진 금액의 일정 부분을 사용하면서 계획서를 작성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하다. 평소에 지출을 계획서를 써가며 사용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개인예산제 실시를 위한 운영 기관은 활동지원 서비스 등 서비스 제공기관이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미 서비스를 하고 있으니 사용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면 조율도 편할 것이다. 어차피 개인예산제로 인해 활동지원 서비스 사용계획서도 수정해서 재조정해야 한다.
코디네이터 또는 퍼실리테이터(이야기를 통해 최적을 도출하도록 이끄는 사람)는 활동지원 서비스 등 기존 서비스 기관에서 사람을 두어 활용할 수 있다. 수수료를 활용하여 경직성 경비를 추가로 들이지 않아도 된다.
코디는 제도에 대한 이해를 돕도록 교육을 할 수 있다. 초기 교육은 동사무소 복지사가 해야 한다. 왜냐면 복지사가 신청을 받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을 모아서 교육하는 것은 모일 동안 기다려야 하고 개인적으로 얼마나 숙지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 그러므로 개인적 교육이 맞다.
코디는 그래도 궁금한 것들에 대해 지원을 할 수 있다. 계획 수립은 외국처럼 별도의 사정과 계획이 필요한 개인예산제면 몰라도 한국의 변형제도라면 굳이 계획서가 필요하지 않다. 계획에 개입하는 것은 개인주도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평생교육이나 다른 치료 프로그램 등을 이용하는 데에 신청이나 이용에 필요한 지원은 할 수 있다. 그리고 원하는 구매권 행사가 여의치 않을 경우 다른 대체를 조언해 줄 수 있다. 정산은 개인이 사회복지정보원에 일일이 들어가는 것은 어려우므로, 접속 권한을 가진 기관에서 대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만 발달장애 등 특별히 자금 사용에 대해 관리나 지원이 필요한 경우 반복적인 사용은 별도의 지원이 없이도 사용하도록 하고, 역량 강화를 위한 지출은 선택에 있어 만족한 선택을 하기 위한 지원을 해 주고 자산과 관련된 지원은 별도의 결정을 위한 절차를 가지며, 그 외 사회적 활동을 위한 고정적 참여의 지출 계획은 핵심지원으로 한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장애인은 과도한 간섭이나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활동지원의 필요성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개인예산제의 서비스 자격이 없는 것일까? 활동지원 서비스를 줄여 그것으로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하자.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지 않아도 다른 서비스는 필요한 장애인이 반드시 있다. 활동지원 대상자란 이유로 무료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부담이란 논리는 맞지 않다.
그러므로 정부는 개인예산제 신청 자격을 모든 장애인으로 확대해야 한다. 단지 활동지원 서비스 등 바우처 서비스를 받지 않고 있는 장애인이라면 그 필요성을 사정하는 도구를 만들어 개인예산제 이용자로 인정하는 절차를 만들어야 하고, 그들을 위한 별도의 추가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활동지원 서비스 종합조사표가 다른 사용의 양을 결정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정부는 경직성 경비를 줄이기 위해 청년인턴 등의 인력을 행정인력으로 동원하고 있다. 이들은 장애인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이 사업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하다. 그리고 고용 창출의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간 근무를 통한 전문인력 양성도 할 수 없고, 필요 이상의 경직성 경비만 발생시킬 것이다.
개인예산제를 주민센터에 신청하면 전문기관에서 사용계획서를 수립하고 정산과 모니터링을 한다. 이 방식은 별도의 인력이 필요하다. 전국으로 확대를 했을 경우 현재 2조 5천억원의 활동지원서비스를 기준으로 보면, 그중 20%에 해당하는 4천억원 정도가 개인예산으로 활용 가능해지고, 이에 대한 경직성 경비가 별도로 1천 억원 이상 마련되어야 한다. 이는 시범사업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전문기관에 맡기고 총괄기관을 두고 각각의 전문기관으로 조직화한 다음, 과도한 간섭으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용 모니터링 정도로 연구사업 기관은 필요하지만 별도의 총괄은 두지 않고 현재 활동지원 서비스처럼 운영하는 것이 적절하다. 제도 개선의 필요성이라든가, 잘 이용하고 있는지 등의 연구를 위해 모니터링은 필요하지만 더 이상의 모니터링은 해서는 안 된다.
서비스 선택권을 허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기관은 지원한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승인이란 용어는 맞지않다. 개인이 어떤 용도로 사용할 것인가의 원칙에 조언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칼럼니스트 서인환 iws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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