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불평등: 우선순위에 밀려난 삶
글. 김정우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
‘우리는 같은 폭풍 아래에 있지만, 같은 배를 탄 것은 아니다’라는 말이 팬데믹 시기를 잘 설명하는 것 같다. 감염병은 사람을 가리지 않지만, 감염병에 대한 노출과 영향은 집단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그리고 그 양상은 질병이 아무리 신종이어도 전혀 새롭지 않다. 사회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배제된 사람들이 또 다시 가장 먼저, 심각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사회적으로 방역과 경제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지난 팬데믹 시기를 돌이켜보면 가장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방역(의료)과 경제에 대한 논의는 우선순위가 뒤처졌다.
사회서비스 중단과 의료이용 장벽
방역 조치들이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이 가능한 여건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여건을 갖추기 위한 조치들은 미뤄지기 일쑤인 반면, 행정편의적 조치들은 충분한 숙고와 대책 없이 시행됐다. 이렇게 ‘방역’이라는 명목으로 시행된 조치들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했다.
지난 2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해 일괄적으로 사회복지시설 휴관을 권고했고, 전국 사회복지시설의 약 99%가 4월까지 문을 닫았다. 노인복지시설, 아동복지시설, 장애인복지시설, 노숙인시설, 정신보건시설 등을 비롯해 다양한 시설에서 특수한 필요를 채우고 있던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시설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일상을 지탱하고 생존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코로나19 유행 속에서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보다는 손쉽게 휴관을 권고했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세분화 하면서, 11월이 되어서야 3단계 이전까지는 사회복지이용시설 운영을 유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역에서 나와서 사시는 분들 중에는 독거이신데 가족이 안 계시는, 중복 장애인분들. 이분들이 특히 사각지대에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코로나 터지고 식당도 문 닫고, 일상을 상시로 지원하는 체계가 없는 상황에서, 당장 밥 먹는 것부터 일상 보내는 게 무너지다 보니까 다들 많이 고립이 되고, 뭐 마스크도 앞뒷면이나 방역 수칙을 숙지하기가 되게 힘든데, 그냥 방치가 되고 있는 상황이고 그렇죠.” - 장애인활동 지원사
코로나19 유행으로 이용에 차질이 생긴 것은 사회복지서비스뿐만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이 의료 이용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 중에서도 노숙인, 이주민 등에게는 의료이용의 장벽이 더 높았다. 기존에 의료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이주노동자는 ‘외국인 근로자 등 의료지원 복지사업’ 시행 의료기관을, 노숙인은 ‘노숙인 진료시설’로 지정된 의료기관을 이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의료기관들이 대책 없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면서, 그렇지 않아도 접근하기 힘들었던 병원은 더욱 요원해졌다.
팬데믹 기간에도 계속되는 제도적 차별과 배제
신종 감염병의 사회경제적 파급력을 완화하기 위해 정부도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예가 이미 두 차례 지급하고, 다시 논의되고 있는 긴급재난지원금이다. 그중 첫 번째는 전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지급되었다. 하지만 비닐하우스와 같이 열악한 환경에 거주하면서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이주노동자들은 지급 대상에서 배제되었다.
긴급재난지원금 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은 고용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아 고용유지지원금 대상도 되지 못했다. 해고를 당한 이주노동자들은 소득이 사라지지만 건강보험은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서 오히려 123,080원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보험료가 책정되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는 열악한 주거와 노동, 코로나19 지원 대책으로부터 배제, 건강보험료 부담 등으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는 어마어마하게 차별이라는 거는, 우리 사회에서는 이주노동자하고 한국인이 차이 난다. 이주노동자는 다른 존재. 재난지원금 하나 때문에 알 수 있어요. 그거 하나만 따져 봐도 얘들은 다른 쪽이야. 우리가 얘들을 챙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결국 한국인들은 다 재난지원금 받을 수 있으면, 이주노동자 빼놓은 거 자체가. 또 다문화가정도 줬잖아요. 다문화가정이 우리 가족이야. 그런데 이주노동자는 우리가 아니야. 그냥 다른 사람이야. 그건 국가가 차별하는 거잖아요. 국가가 차별을 하고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여서, 코로나 끝나면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조금 더 힘들어지고 경제 쪽으로, 그때 어떤 차별을 들어오는지 알 수가 없는 거죠.” - 이주노동자노동조합 활동가
이주민과 다르게 제도의 대상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배제된 사람들도 있다. 홈리스행동의 서울시 노숙인 재난긴급생활비 지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거주불명등록자라서’, ‘신분증이 없어서’, ‘주소지가 멀어서’, ‘신청방법을 몰라서’ 등의 이유로 노숙인들이 지자체 지원금 신청을 하지 않았고, 실제 지원금을 수령한 비율은 응답자 중 11.8%에 불과했다.
중앙정부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울시는 노숙인들이 정부의 재난지원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거리노숙 지역을 방문하여 신청 상담을 진행했지만, 상담을 진행한 298명 중 절반이 훨씬 넘는 192명은 여전히 지원금을 수령하지 못했다. 결국 가장 지원금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배제된 것이다.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적극적 지원
기존의 구조적 차별과 배제 가운데 있던 사람들은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도 여전히 우선순위가 떨어졌다. 살펴본 것처럼 코로나19 대책으로부터 배제되거나, 대책이 오히려 필수적 서비스의 공백을 야기하기도 했다. 우선순위 문제는 예산 편성을 통해서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시설 집단감염으로 장애인 시설화의 문제가 대두되었고, 대통령의 국정과제에도 ‘장애인 탈시설’이 포함돼 있음에도 예산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생존의 기로에 놓여있는 장애인들을 위한 예산이 오히려 삭감되기도 했다.
사람들을 최대한 배제하는 사회복지체계, 구조적 인종주의,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잘 반영되지 않는 거버넌스 등을 토대로 기존에 하던 방식대로 팬데믹 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을 더욱 밀어내는 것과 다름없다. 정부는 비판받지 않도록 현 상황을 관리하는 데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위태로워진 사람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정책 결정에 있어서 가장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순위를 끌어올리는 것은, 지금의 위기로부터 조금이라도 빠르게 벗어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참조 창원대학교 인권센터
https://www.changwon.ac.kr/humanrights/na/ntt/selectNttInfo.do?mi=12673&nttSn=852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