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의 가족, 중증장애인 생존권 위협
영문 모를 상속포기재산, 6년간 수급 제외 '눈물'
“내 권리 찾고 싶다”…상속지분 청구 소송 제기
“저는 가족의 한 구성원이 되고 싶었지만, 가족들은 저를 물건 취급했습니다.”
동회 씨는 ‘두 얼굴’의 가족들을 상대로 법정 싸움을 시작한다.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 남고 싶은 마음에 몇 번이고 망설였지만,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큰 용기를 냈다. “저는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30년 넘는 시설 생활,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방문
동회 씨는 7세 무렵, 가족들과 떨어져 A장애인거주시설에 입소했다. 아주 가끔 어머니가 찾아왔을 뿐 그의 형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미국으로 입양 갈 위기까지 겪으며 가족들에게 오랜 세월 배제당해왔던 동회 씨.
그러던 지난 2016년 6월, 오랜만에 어머니가 찾아왔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땅을 팔아야 해.”
어머니는 간단한 설명만 한 채 동회 씨의 인감도장만 갖고 떠나버렸다.
그 후 비로소 그동안 끝내 알고 싶지 않았던 가족들의 ‘두 얼굴’을 알게 된다. 몇 달 후 병원에 갔다가 의료급여 대상자에서 제외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 동회 씨는 시설에서 오랜 세월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왔다. 동회 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알고 보니 동회 씨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두 개의 주민등록번호를 갖고 있었다. 가족들이 무연고자만 입소할 수 있던 장애인시설에 동회 씨를 입소시키기 위해 허위 주민등록번호를 만들었고, 최근 이 주민등록번호를 없애며 원래 태어날 때 받았던 주민등록번호 하나만 남게 됐다.
이 주민등록번호로 동회 씨는 무연고자가 아닌 가족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며, 기초생활수급을 더는 받을 수 없다. 무연고자만 살 수 있던 시설에서도 나와야 했다.
▲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 모습.ⓒ에이블뉴스
■울며 겨자 먹기로 탈시설, “수급도 안된다구요?”
예상치 못하게 일찍 시작하게 된 동회 씨의 탈시설. 그래도 이왕 시작한 자립생활은 새로운 인생이 되길 바랬다. 그 해 12월, 동회 씨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운영하는 체험홈에 입소한 후, 생활비를 위해 기초생활수급비를 신청했다.
하지만 가족들의 ‘두 얼굴’은 끝나지 않았다. 구경도 못 해봤던 상속포기재산이 6000만원이나 있어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없다는 통보였다.
아버지가 사망한 것도 뒤늦게 알게 된 동회 씨는 재산 상속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까맣게 몰랐다. 그제야 어머니가 가져간 인감도장의 용도를 알게 됐다
현재 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상속을 포기한 경우 그 포기한 금액은 기타재산으로 산정돼 1년에 900만원씩 자연감소분으로 계산되고, 포기한 금액이 모두 자연 감소해야 기초생활보장을 받을 수 있다. 동회 씨는 6년이 지나야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을 수 있다.
“괘씸감과 당혹감을 느꼈고, 그 유산을 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동회 씨에게는 시간이 없다. 올해 연말이면 체험홈에서 나와야 하며, 그 뒤로 자립생활을 위한 돈이 필요하다.
동회 씨는 지난달 28일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에 자신의 형을 상대로 상속지분을 찾기 위한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청구금액은 법정 상속분 일부와 위자료 등 총 1억6000여만원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소송을 지원했고, 희망을 만드는 법 김재왕 변호사, 법무법인 디라이트 김용혁 변호사가 법률대리인으로 나섰다.
4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재왕 변호사는 “사건의 원고는 거의 평생을 시설에서만 거주했고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사실도 듣지 못했다. 아버지 재산이 모두 상속된 형에게 상속권 지분을 받기 위한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재산권을 박탈한 손해배상에 대해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에 따른 1000만원을 함께 청구했다”고 소송 취지를 설명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상임대표는 “장애인들은 집 안에서부터 차별당하고, 재산 분배 시 언제나 제외된 채 살아오고 있다. ‘너는 장애가 있으므로 얼마만 주면 되지, 너는 시설에 있으면 되지’라며 배제당한다”면서 “이번 소송이 가족 안에서부터 내 권리를 찾기 위한 소송”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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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lovelys@ablenews.co.kr)